2013년05월17일
부처님오신날
지리산 칠암자 순례
평송수련원앞에서 06시30분 출발~
버스4대 180명이 함께 순례길에 오르고
금산휴게소에서 40분 소요
(20분쉰다고 했는데 라면이 늦게나왔다는 사람 때문에 40분이소요됐다,
-나는 음식이 늦게 나오기에 주문취소를 하고 버스로 돌아왔는데....)
함양I.C로 진입
오도재를 넘어 음정마을에 도착
09시45분 산행시작
작전도로를 지나고
1시간30분만에 도솔암도착
도솔암에서 바라본 천왕봉
도솔암
투구를 쓴 장수가 다스리는 암자라는 뜻의 도솔암은
조선조 의병장 청매조사(1548~1623)께서 수십년간 용맹정진하던 곳이라는데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스님이 1982(63세때)
이곳에 초암을 짖고 수도한 바 있는
조용한 수도처이다.
도솔암편액
석간수
도솔암에서 참배 드리고 나온 내 뒷모습.
까페검색 하다가 발견해서 퍼왔다.
도솔암에서 바라본 전경
도솔암에서 영원사 가는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이 계곡을 건너니 영원사가 나온다
도솔암에서 40분걸려 영원사에 도착하고
이곳까지 차가 올라온다
지리산 영원사는 해발 1천 2백미터가 넘는 영월봉 아래
해발 920미터 높이에 자리잡고 있는고찰이다.
신라 때의 고승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창건하여 영원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입구에 돌 기둥이 양쪽에 있다.
이 절에 있었던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영관(靈觀)을 비롯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가 12년을 수도하였고,
청매(靑梅)·사명(四溟)·지안(志安)·상언(常彦)·포광(包光) 등
당대의 고승 109명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고승들이 거쳐간 방명록이라는
≪조실안록 祖室案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영원사편액 두류선림
영원대사이후 쟁쟁한 선승들이 거쳐간 수도도량이건만,
해방이후 이념분쟁으로 인한 큰 상처를 입은 곳이기도하다.
빨치산의 아지트라는 이유로
군경토벌대가 이곳을 불질러 완전소실 되었다고 한다.
6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념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니...
예를 드리고 나오니 사람들이 점심공양을 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밥을 새로 하는 중이란다. 20분 걸린다고...
줄서있는 사람들 서로 옥신각신하고...
그냥 가려고 나서서 지나가는데
(암자에서 점심공양을 할수 있다해서 점심준비를 안해와서 대략 난감하지만
배에 비축된게 많아서 한끼 안먹어도 될것같아)
옆에 방에서 보살한분이 나오시며 비빔밥 두그릇을 건네주신다.
빗기재 가는길
파르티잔의 흔적인 '산죽비트'가 이 근처라고 지도에 나와있는데 찾질 못했다.
한국의 체 게바라 같은
이현상,박헌영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인물들이 스쳐간 역사가 있는곳인데...
지리산 전체 풍광이 보이는 조망터
천왕봉 부터 반야봉까지
반야봉
천왕봉
지리산 주능선
적송아래에 사람들이 앉아 밥을 먹고 있어서리
사람들 안나오게 찍으려 했더니
적송의 아름다움을 다 나타내질 못했다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의 전경을 휴대폰의 파노라마로 담았다.
-한겨레신문스크랩-
32년 지리산 은둔 수행자 현기 스님
ᆞ
고려 고승 보조 지눌이 견성한 지리산 1100고지 상무주암에서 포행 중인 현기 스님 사진 조현
지리산의 은자 현기(74) 스님이 상경해 서울 조계사에서 대중 들과 상봉했다.
‘부처님 오신 날’(5월17일)을 앞두고, 선원수좌회가 4월 24일부터 5월 2일까지 9명을 초청해 여는‘대선사 법회’에서다.
그가 길도 인적도 끊긴 지리산 1100고지 상무주암에서 홀로 지낸지 32년만이다. 강산이 세번도 더 변했을 세월이다. 그 긴 세월 고향을 떠난 방랑자는 우리인가, 그인가.
“아이는 뭔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생각이 나면 그것들을 쫓아 제 발로 어디든 걸어간다. 거기에 현혹돼 부모의 말도 들리지않는다. 그렇게 밖으로 내달리다보면 결국 부모와 헤어지고, 부모와 원수도 된다. 그래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춥고 배고픈 고초를 겪으면 부모와 고향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버린 그 산골을 홀로 지킨 산승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상기시킨다. 온갖 세상사에 끌려다니느라 언제 떠나온지조차 까마득한 ‘마음의 고향’이다. 30여년 전과 달리 고층빌딩으로 둘러싼 조계사 앞마당에서 태고적 고향을 이야기하는 그가 꿈을 꾸는 것인가,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잠자리에서 잠을 자도 꿈을 꿔 천리 만리 밖을 돌아다니는게 생각이다. 꿈을 꾸다가 눈을 떠야만 꿈 속 방랑을 그친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강 속에 달을 건지겠다고 강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강에 비친 달이 하늘에 뜬 달 그림자이듯 지금 내가 실제라고 믿는 모든 것이 실은 상(相·모양이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을 쫓아 밖으로 내달리는 마음을 잘라버리는게 ‘화두’다. 형상에도 머물지 않고, 소리도 쫓지않고, 생각조차 끊어진다면, ‘이 뭐꼬?’(‘이것이 무엇인가’의 경상도식 표현인 화두)
선사가 내리친 검에 온갖 유혹과 걱정을 따라 이리 저리 방황하는 마음이 싹둑 베어진 것인가. 2천여 대중이 가득 메운 조계사 마당이건만 직전의 그 마당이 아니다. 상념을 여의니 무념이고, 번다함을 놓으니 고요하고, 방랑을 쉬니 고향이다.
“우리의 자성(본래 성품)은 그처럼 청정한데, 마음이 미(迷·미혹함)해서 번뇌가 뿌리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땅은 원래 비어있건만 콩씨를 던지면 콩이 자라고, 팥씨를 던지면 팥이 자란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든 인연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바깥 경계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이날 화두선의 묘미를 세상에 전하려는 선원수좌회(선승들의 모임)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그는 법석에서도, 법회 뒤 가진 간담회에서도 지리산에서와 다름 없이 시종일관 ‘고향’을 떠나지않았다.
그는 ‘온갖 세파 속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이 어떻게 산승처럼 수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중생이 따로 있고,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 따로 있고, 번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중생이 곧 부처요, 번뇌가 곧 보리(菩提·깨달음)다. 또한 세상이 무상(허망하게 변함)하고 고통이 있기에 공부(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 탓, 상황 탓 말라’는 것이다. 그 세상, 그 상황이 바로 공부심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진흙 속에서도, 불 속에서도 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불교 공부의 묘미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무주암에서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엔 “철저하게 살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솥뚜껑처럼 군살이 박힌 손이 매일 새벽 2시40분이면 기상해 수도하고 직접 밥하고 빨래하고 밭을 일구는 삶을 숨길래야 숨기지 못한다.
누군가 고지에서 홀로 사는 노승에 대한 걱정에 ‘앞으로는 어찌할 것인가’며 묻자, “일념(한 생각)이 여시(如是·바로 지금 여기)”라고 했다.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않은 미래로 천리 만리 방황하며 생멸 윤회를 반복하는 미혹을 내리치는 비수다. 한 순간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스님이 시·공을 쫓아 다니는 마음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부처님이 도솔천(천상세계의 하나로 석가가 세상에 오기 전 머물던 곳)을 여의지않고 왕궁에 내려오고, 모태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중생을 다 제도(구제)했다’고 하는데 도솔천과 왕궁과는 공간적 거리가 있고, 부처님이 태어난 시대와 지금 중생들이 사는 때는 시간적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것인가. 마음이 밖으로 내달리면 공간과 시간의 간격이 있다. 그러나 바깥 경계를 끊어버리면 시공의 간격이 사라진다.”
시공이 멎은 듯 고요해졌을 때, 현기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와 지금 자신과 자타로 나뉘지않고 간격이 없다는 것이 믿어지느냐”고 묻자 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듯이,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것처럼. 선법회에서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희유한 광경이다.
‘부처님 오신 날’은 언제이며,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대중들이 마음을 쉬니,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며, 사람마다 부처가 아닌가.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눈을 떠라"
며칠전 이 신문기사를 보았는데 ...
상무주암
예를 올리고 나와서
이곳에서 점심공양을 또하고..
이곳 에 봉사하러 오신 분들이 정성껏 산객들을 맞이 하신다.
현기스님 과
반가운 마음에 무례를 무릅쓰고 부탁을 드렸다
32년간 이곳에서 수행정진 하신 현기스님
경봉스님이 쓰신 편액
상무주암에서 반야봉이 가까이 보인다
지리산 주능도
암자를 나서기전 다시한번
상무주암을 나서며 바라본 천왕봉
산중에서 웬분이 작업중이다.
기이한 나무를 다듬어 작품을 만드는 모양이다.
문수암에 들어서며
문수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천인굴
약수가 그렇게 시원할수가 없다
문수암 편액
예를 드리고 나와서 바깥 풍경을 보고있으려니
아주머니와 대화중이던 이곳 노승게서
나를보고 '어디서 오셨느냐?' 고 물으시기에 '대전에서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두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셔서 법당쪽으로 가셔서 불상뒤에
저 편액을 시주하신게 대전분이라고 설명을 해주신다.
문수암에서 바라본 전경
20여분 걸으니 삼불사가 보인다.
삼불사에 들어서며
삼불사에서 바라본 풍경
이곳 비구니승 께서 솔잎향 나는 차 를 주신다.
저 배를 어찌할꼬...
점심공양 2번하고 떡에 과일에...
앉는다고 배가 가려 지는것도 아니고
약수암가는길
계속 내리막이고 흙길이다
사방이 시원스레 펼쳐진곳에 무덤이 있는 조망터가 나온다
지나온길(삼정산방면)을 돌아보고
지리산주능이 펼쳐진다
인월방면
일성콘도있는곳을 당겨보았다
마천면
약수암에 들어서며
부처님오신날인데도 연등하나없이 고요하다
보광전
실상사에 접어들고
온길을 뒤돌아보니 천왕봉이 보이고
천왕문을 들어 서니 아이들 노래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약사전에 예를 올리고
보광전
해탈교에서 천왕봉이 직선으로 보인다
작년가을에 왔을적에는 운무로 인해 보이질 않았는데
집합장소에 5시에 도착하고
2대는 벌써 떠났고 3호차가 출발하려하기에
바쁜일도 없고 하여 4호차로 가기로 한다.
아직도 안내려온 분들을 기다리던 도중 하늘을 보니 이렇게
1시간 30분을 기다려 이제 출발한다.
다른차들은 벌써 대전에 도착했단다.
함양휴게소에서
|
음정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 |
거리(km) |
- |
4km |
1.7 |
2.6 |
1 |
1 |
3.5 |
1.5 |
소요시간 |
|
1시간25분 |
40분 |
1시간 |
20분 |
25분 |
1시간 |
30분 |
고도 |
|
1,165m |
895m |
1,162m |
1,060m |
990m |
560m |
330m |
도착시간 휴식시간 출발시간 |
9:45 |
11:11 |
12:00 |
13:36 |
14:20 |
14:50 |
16:00 |
16:45 |
|
10 |
40 |
24 |
5 |
10 |
5 |
10 | |
|
11:20 |
12:40 |
14:00 |
14:25 |
15:00 |
16:05 |
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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